연금 개시 신청서를 쓰기 직전에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은 대개 이것입니다. "그래서 세금은 얼마나 떼나요?" 답이 한 줄로 안 나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같은 계좌에서 나가는 같은 100만원이라도, 그 돈이 어디서 온 돈이냐에 따라 세율이 다르게 붙기 때문입니다.
연금계좌 안의 돈은 겉보기에 한 덩어리지만 세법은 이를 세 가지 재원으로 나눠 봅니다. 그리고 인출할 때 어느 재원부터 나가는지도 법에 정해져 있습니다. 이 구조만 잡으면 "1,500만원 넘으면 종합과세된다더라" 같은 이야기가 내 경우에 해당하는지 아닌지 바로 판단이 섭니다. 재원별 세율부터 종합과세 경계선까지 하나씩 알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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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물통에서 세 갈래 관으로 나뉘어 흐르는 모습을 그린 도형 일러스트 |
연금계좌 안의 돈은 세 종류입니다
세금을 계산하려면 먼저 돈의 출신을 구분해야 합니다.
첫째는 과세제외금액입니다. 세액공제를 받지 않고 넣은 돈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미 세금을 낸 돈이라 나갈 때 다시 과세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이연퇴직소득, 즉 퇴직할 때 IRP로 넘어오면서 퇴직소득세를 내지 않고 미뤄둔 퇴직금입니다. 셋째는 세액공제를 받은 납입액과 계좌에서 불어난 운용수익입니다. 아직 한 번도 과세되지 않은 돈이라 인출할 때 세금이 붙습니다.
인출 순서는 본인이 고르는 것이 아닙니다. 소득세법 시행령 제40조의3 제1항이 과세제외금액 → 이연퇴직소득 → 세액공제를 받은 금액과 운용수익 순으로 인출되는 것으로 본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세금이 가벼운 돈부터 먼저 나가는 순서인데, 덕분에 연금을 받기 시작한 초기 몇 년은 세금이 거의 안 붙다가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늘어나는 일이 생깁니다. 계좌 잔액이 줄어서가 아니라 재원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퇴직금에서 나온 연금 — 원래 세금의 70%, 60%, 50%
이연퇴직소득이 연금으로 나갈 때는 나이와 무관하게 별도의 규칙을 씁니다. 소득세법 제129조 제1항 제5호의3은 연금 실제 수령연차가 10년 이하면 연금외수령 원천징수세율의 70%, 10년을 초과하고 20년 이하면 60%, 20년을 초과하면 50%를 적용한다고 정합니다.
여기서 '연금외수령 원천징수세율'이란 퇴직할 때 계산돼 원천징수영수증에 적힌 이연퇴직소득세를 퇴직급여로 나눈 실효세율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퇴직급여 2억원에 이연퇴직소득세가 1,000만원이면 실효세율은 5% 수준입니다. 이 연금을 받기 시작해 매년 2,000만원씩 인출한다면, 수령 10년차까지는 2,000만원 × 5% × 70% 정도가 그해에 떼이는 세금이 됩니다.
중요한 건 20년 초과 구간이 별도로 있다는 점입니다. 10년과 60%까지만 안내하는 자료가 아직 많은데, 현행 조문은 20년을 넘기면 50%까지 내려간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지급기간을 20년으로 잡을지 25년으로 잡을지 고민하는 분이라면 이 한 줄이 계산을 바꿉니다.
세액공제 받은 돈과 운용수익 — 나이에 따라 갈립니다
같은 조 제1항 제5호의2는 연금계좌 납입액이나 운용실적에 따라 증가된 금액을 연금수령할 때의 세율을 정합니다. 연금수령일 현재 나이 기준으로 70세 미만은 100분의 5, 70세 이상 80세 미만은 100분의 4, 80세 이상은 100분의 3입니다. 여기에 지방소득세가 붙어 실제로는 5.5%, 4.4%, 3.3%가 됩니다.
같은 항 다목은 사망할 때까지 받는 종신계약에 따른 연금소득에 100분의 3을 적용한다고 정하고, 각 목의 요건을 동시에 충족하면 낮은 세율을 적용한다는 문장이 앞에 붙어 있습니다. 종신형으로 설계한 경우라면 나이와 관계없이 낮은 쪽이 적용되는 구조입니다.
이 세율은 원천징수 단계의 세율입니다. 여기서 끝나느냐, 아니면 다음 해에 종합소득세로 다시 계산하느냐가 아래에서 갈립니다.
1,500만원 기준이 적용되는 범위
이 부분에서 오해가 가장 많습니다. 소득세법 제14조 제3항 제9호는 분리과세연금소득을 세 가지로 나열하는데, 순서를 그대로 읽어보면 오해가 풀립니다.
가목은 퇴직소득을 연금수령하는 연금소득입니다. 금액 조건이 붙어 있지 않습니다. 나목은 의료목적이나 천재지변, 그 밖에 부득이한 사유를 갖춰 인출하는 연금소득으로, 역시 금액 조건이 없습니다. 그리고 다목이 "가목 및 나목 외의 연금소득의 합계액이 연 1천500만원 이하인 경우 그 연금소득"입니다.
즉 1,500만원 기준은 세액공제를 받은 납입금과 운용수익에서 나오는 연금에만 걸립니다. 퇴직금에서 나오는 연금은 금액이 얼마든 분리과세로 끝납니다. 퇴직금 연 3,000만원과 세액공제 재원 연 1,000만원을 함께 받는 경우, 합계 4,000만원이지만 종합과세 판정에 들어가는 금액은 1,000만원뿐입니다.
이건 세금을 줄이는 요령이 아니라 법 조문이 원래 그렇게 쓰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금 총액 1,500만원"으로 잘못 알고 수령액을 억지로 낮추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1,500만원을 넘겼다면 선택지가 하나 더 있습니다
다목 기준을 넘기면 그 연금소득은 종합소득에 합산됩니다. 다만 소득세법 제64조의4가 선택권을 줍니다. 종합소득 결정세액을 그대로 적용하거나, 해당 연금소득에 100분의 15를 곱한 금액에 나머지 종합소득 결정세액을 더한 금액 중 하나를 골라 적용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유리한지는 다른 소득 규모에 달려 있습니다. 다른 소득이 거의 없어 낮은 세율 구간에 머문다면 종합과세가 유리할 수 있고, 사업소득이나 임대소득이 있어 높은 구간에 걸린다면 15% 쪽이 유리해집니다. 선택은 종합소득세 신고 때 하게 되므로, 연금 개시 단계에서 미리 겁먹을 일은 아닙니다.
한 가지 더 기억해두실 점이 있습니다. 1,500만원을 넘긴 순간 그 연금소득 전액이 대상이 됩니다. 1,500만원 초과분만 따로 떼어내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액공제 재원에서 나오는 연금이 1,500만원 언저리라면, 인출 속도를 조절해 경계를 넘기지 않는 선택이 실익을 만들기도 합니다.
한도를 넘겨 뽑으면 세금이 달라집니다
연금수령한도를 넘겨 인출한 금액은 연금수령이 아니라 연금외수령이 됩니다. 시행령 제40조의3 제3항은 인출액이 한도를 넘는 경우 연금수령분이 먼저 인출되고 그다음 연금외수령분이 인출되는 것으로 본다고 정하고 있어, 초과분에만 무거운 세율이 붙습니다.
연금외수령분의 세율은 재원에 따라 다시 갈립니다. 세액공제를 받은 납입금과 운용수익이라면 소득세법 제129조 제1항 제6호 나목에 따라 100분의 15, 지방소득세를 더해 16.5%입니다. 이연퇴직소득이라면 감면 없이 원래의 퇴직소득세율이 적용됩니다.
차이는 단순합니다. 5.5%로 받을 수 있었던 돈을 한도를 넘겨 뽑으면 16.5%가 됩니다. 세 배 차이입니다.
숫자로 따라가 보는 두 가지 경우
첫 번째 경우입니다. 연금 수령일 현재 나이가 70세 미만이고, IRP 한 계좌에서 연 2,000만원을 받습니다. 이 가운데 1,200만원은 퇴직금 재원, 800만원은 세액공제 재원이라고 해보겠습니다. 퇴직금 재원 1,200만원에는 이연퇴직소득세의 70% 또는 60%가 붙고, 이건 종합과세 판정에서 아예 빠집니다. 세액공제 재원 800만원에는 5.5%가 원천징수되고, 1,500만원 이하이므로 그것으로 끝납니다. 다음 해 5월에 따로 할 일이 없습니다.
두 번째 경우입니다. 세액공제 재원에서만 연 1,800만원이 나옵니다. 1,500만원을 넘겼으므로 이 1,800만원 전액이 종합소득에 들어가고, 신고할 때 종합과세와 15% 분리과세 중 유리한 쪽을 고르게 됩니다. 이때 같은 사람이 퇴직금 재원으로 연 1,200만원을 더 받고 있어도, 그 1,200만원은 판정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두 경우의 차이를 만든 건 총 수령액이 아니라 재원 구성이었습니다.
연금 개시 전에 확인할 것들
- 퇴직소득 원천징수영수증에 적힌 이연퇴직소득세 금액과 퇴직급여 총액(실효세율을 뽑는 기준입니다)
- 계좌 안의 재원 구성 — 과세제외금액, 이연퇴직소득, 세액공제 받은 납입액과 운용수익이 각각 얼마인지
- 올해 세액공제 재원에서 나올 연금액이 1,500만원 경계 안쪽인지
- 연금 지급기간이 10년, 20년 경계 중 어디에 놓이는지
- 그해 연금수령한도 금액과 실제 인출 예정액의 차이
- 종신형으로 설계할 계획이 있는지(세율이 3%로 내려가는 목에 해당하는지)
- 연금 외에 사업소득·임대소득 등 다른 종합소득이 있는지
자주 묻는 질문
연금 받으면 매년 5월에 종합소득세 신고를 해야 하나요?
대부분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퇴직금 재원 연금과 부득이한 사유로 인출한 연금은 금액과 무관하게 분리과세로 끝나고, 세액공제 재원 연금도 연 1,500만원 이하면 원천징수로 종결됩니다. 소득세법 제14조 제3항 제9호가 이 세 가지를 분리과세연금소득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도 1,500만원 계산에 들어가나요?
들어가지 않습니다. 1,500만원 기준은 소득세법 제20조의3 제1항 제2호와 제3호에 따른 연금계좌 관련 연금소득에 적용되는 기준입니다.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소득은 제129조 제1항 제5호에 따라 기본세율로 원천징수되고 연말정산 또는 종합소득세 신고에서 별도로 정산됩니다.
연금 개시 첫해에 세금이 거의 안 나왔는데 몇 년 뒤부터 늘었습니다. 왜 그런가요?
인출 순서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소득세법 시행령 제40조의3 제1항은 과세제외금액 → 이연퇴직소득 → 세액공제 받은 금액과 운용수익 순으로 인출되는 것으로 봅니다. 세금이 없는 재원이 먼저 소진되고 나면 그다음 재원의 세율이 적용되기 시작합니다.
연금을 두 계좌에서 나눠 받으면 1,500만원을 두 번 쓸 수 있나요?
없습니다. 조문이 "합계액이 연 1천500만원 이하인 경우"라고 되어 있어 계좌 수와 무관하게 합산합니다. 금융회사가 서로의 지급 내역을 알지 못하더라도 국세청 단계에서 합산되므로, 계좌를 나눠 경계를 피하는 방법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1,500만원을 조금 넘겼는데 초과한 금액만 종합과세되나요?
아닙니다. 기준을 넘기면 해당 연금소득 전액이 종합과세 대상이 됩니다. 다만 소득세법 제64조의4에 따라 그 연금소득에 15%를 곱한 세액을 적용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어, 다른 소득이 많은 경우에는 실제 부담이 크게 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의료비 때문에 한꺼번에 뺐는데도 낮은 세율이 적용되나요?
소득세법 제14조 제3항 제9호 나목은 의료목적이나 천재지변, 그 밖에 부득이한 사유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춰 인출하는 연금소득을 분리과세연금소득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요건과 증빙 절차가 정해져 있어 금융회사에 사유를 신고하고 서류를 제출해야 적용됩니다. 사후에 소급해 처리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으니 인출 전에 확인하셔야 합니다.
계산기를 두드리기 전에 확인할 한 장
연금소득세는 세율표를 외운다고 계산되지 않습니다. 필요한 건 내 계좌의 재원 구성표 한 장입니다. 과세제외금액이 얼마이고, 이연퇴직소득이 얼마이고, 세액공제를 받은 납입액과 운용수익이 얼마인지. 이 세 숫자는 계좌를 관리하는 금융회사가 갖고 있고, 요청하면 확인해줍니다.
그 표를 받아 든 다음에 이 글의 세율을 대입해보시면, 앞으로 몇 년 동안 어느 시점에 세금이 올라갈지 미리 보입니다. 연금 개시 신청서에 지급기간을 적어 넣기 전에 해두면 좋은 계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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