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등록금·결혼·장례는 IRP 중도인출 사유가 아닙니다.

대학등록금·결혼·장례는 IRP 중도인출 사유가 아닙니다.

IRP 계좌에 돈이 들어 있는 걸 알면서도 쓰지 못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아이 등록금 고지서가 나왔는데, 부모님 장례를 치렀는데, 창구에 가서 물어보면 "그 사유로는 중도인출이 안 됩니다"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계좌는 내 것이고 돈도 내 돈인데 왜 안 되는 걸까요.

IRP는 노후소득 보장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라, 돈을 빼는 사유가 법에 열거되어 있습니다. 열거되지 않은 사유는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인출 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대신 다른 경로가 열려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유가 되고 어떤 사유가 안 되는지, 안 될 때 남는 선택지와 그 비용은 얼마인지 하나씩 살펴볼게요.

자물쇠로 잠긴 나무 상자와 옆에 놓인 열쇠

IRP에서 돈을 빼는 길은 세 갈래입니다

먼저 큰 그림을 잡고 시작하겠습니다. IRP에서 적립금을 꺼내는 방법은 세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급여 수령입니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시행령 제18조 제1항은 IRP의 급여를 연금과 일시금으로 나누고, 연금은 55세 이상 가입자에게 지급기간 5년 이상으로, 일시금은 55세 이상으로서 일시금 수급을 원하는 가입자에게 지급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55세를 넘겼다면 사유를 따질 필요 없이 이 길로 갑니다.

둘은 중도인출입니다. 55세가 되기 전에 법정 사유가 생겼을 때 계좌를 유지한 채 일부만 빼는 방법입니다. 셋은 해지입니다. 사유가 없을 때 남는 마지막 길이고, 계좌 전체를 닫는 방식입니다.

중도인출이 되는 사유, 조문에 적힌 그대로

같은 시행령 제18조 제2항이 IRP의 중도인출 사유를 정하고 있고, 세부 내용은 같은 시행령 제2조 제1항을 끌어다 씁니다. 두 조문을 합쳐 읽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 무주택자인 가입자가 본인 명의로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 무주택자인 가입자가 주거를 목적으로 전세금 또는 보증금을 부담하는 경우 — 조문은 민법 제303조의 전세금과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2의 보증금을 가리킵니다
  • 6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질병이나 부상의 의료비를 부담하는 경우 — 대상은 가입자 본인, 배우자, 그리고 가입자 또는 배우자의 부양가족입니다
  • 재난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 —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상 재난에 해당하고 고용노동부장관이 정해 고시하는 사유와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 중도인출 신청일부터 거꾸로 5년 이내에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
  • 중도인출 신청일부터 거꾸로 5년 이내에 개인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은 경우
  • 퇴직연금 수급권을 담보로 받은 대출의 원리금을 상환하기 위한 경우 — 이때 인출액은 상환에 필요한 금액 이하로 제한됩니다

목록을 보면 성격이 보입니다. 살 집을 마련하는 일, 오래 아픈 일, 재난, 그리고 회생 절차. 노후자금을 깨뜨려도 사회적으로 납득할 만한 상황만 골라 놓았습니다.

자주 착각하는 것 — 등록금·결혼·장례는 인출 사유가 아닙니다

실제 창구에서 가장 많이 부딪히는 대목입니다. 시행령 제2조 제1항에는 제4호의2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가입자 본인, 배우자, 또는 가입자나 배우자의 부양가족의 대학등록금, 혼례비, 장례비를 가입자가 부담하는 경우입니다. 이 조항을 보고 "등록금도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제2조 제1항은 원래 수급권 담보제공 사유를 정한 조문입니다. IRP 중도인출을 정한 제18조 제2항은 이 가운데 제1호, 제1호의2, 제2호, 제5호 중 재난 부분만 골라서 인용합니다. 제4호의2는 인용 목록에 없습니다. 확정기여형(DC)의 중도인출 사유를 정한 같은 시행령 제14조도 마찬가지입니다.

결론은 명확합니다. 대학등록금, 혼례비, 장례비는 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는 사유이지 계좌에서 돈을 꺼낼 수 있는 사유가 아닙니다. 같은 조문 안에 나란히 적혀 있어서 생기는 착각인데, 이 차이를 모르고 서류를 준비했다가 창구에서 돌아서는 일이 생깁니다.

DC형과 IRP는 사유가 미묘하게 다릅니다

회사에서 DC형에 가입해 있다가 퇴직하며 IRP로 옮긴 분이라면 이 차이도 알아두실 만합니다. 두 제도의 중도인출 사유는 겹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의료비 항목이 대표적입니다. DC형을 정한 시행령 제14조 제1항 제1호의2는 "가입자가 본인 연간 임금총액의 1천분의 125를 초과하여 의료비를 부담하는 경우"라는 금액 요건을 붙여 두었습니다. 반면 IRP를 정한 제18조 제2항 제3호는 이 금액 요건을 상시근로자 10명 미만 사업장의 특례 가입자에게만 한정해 적용합니다. 전세금·보증금 항목에도 비슷한 구조의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사정이라도 어느 계좌에 돈이 들어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회사 계좌와 개인 IRP를 둘 다 갖고 있다면, 어느 쪽에서 빼는 것이 가능한지 각각 확인해보셔야 합니다.

사유가 없으면 남는 길은 해지 하나입니다

IRP는 사유 없이 일부만 빼는 것이 되지 않습니다. 필요한 금액이 계좌 잔액의 일부라도, 사유가 없으면 계좌 전체를 해지해야 합니다. 500만원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5,000만원짜리 계좌를 통째로 닫아야 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해지를 검토하기 전에 순서를 한 번 점검해보시면 좋습니다. 사유에 해당하는지 다시 확인하기, 담보대출로 해결되는지 알아보기, 다른 자금원이 있는지 따져보기. 이 세 가지를 거치고도 남는 선택이 해지입니다.

해지하면 세금은 재원에 따라 갈립니다

해지든 중도인출이든, 나가는 돈에 붙는 세금은 그 돈의 출신에 따라 다릅니다. 소득세법 시행령 제40조의3 제1항은 인출 순서를 과세제외금액, 이연퇴직소득, 세액공제를 받은 금액과 운용수익 순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세액공제를 받지 않고 넣은 돈은 세금 없이 나옵니다. 퇴직금에서 온 이연퇴직소득은 연금이 아닌 형태로 나가므로 감면 없이 퇴직소득세가 붙습니다. 세액공제를 받은 납입액과 운용수익은 소득세법 제129조 제1항 제6호 나목에 따라 100분의 15, 지방소득세를 더해 16.5%로 원천징수됩니다.

다만 부득이한 사유에 해당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소득세법 제14조 제3항 제9호 나목은 의료목적, 천재지변, 그 밖에 부득이한 사유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춰 인출하는 연금소득을 분리과세연금소득으로 봅니다. 이 경우 16.5%가 아니라 연금소득 세율이 적용됩니다. 같은 의료비 인출이라도 요건을 갖춰 신고했느냐가 세 배 가까운 차이를 만듭니다. 금융회사에 사유를 알리고 증빙을 제출하는 절차가 있으므로, 돈부터 빼고 나중에 정리하겠다는 순서는 위험합니다.

담보대출이라는 다른 문

인출이 막혔을 때 남는 경로가 담보대출입니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7조 제2항은 퇴직연금 수급권을 담보로 제공할 수 있는 사유를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고, 그 사유가 앞서 본 시행령 제2조 제1항입니다. 인출이 안 되는 대학등록금·혼례비·장례비가 여기에는 들어 있습니다.

담보로 제공할 수 있는 한도는 시행령에 따로 정해져 있고, 대출을 실제로 취급하는지는 퇴직연금사업자마다 다릅니다. 취급하지 않는 곳도 있으니 계좌를 관리하는 금융회사에 담보대출 취급 여부와 한도, 금리를 먼저 확인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 대출의 원리금을 갚기 위해서라면 시행령 제18조 제2항 제7호에 따라 중도인출이 열립니다. 상환에 필요한 금액을 넘길 수는 없습니다.

55세를 넘겼다면 사유를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중도인출 사유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55세 이상이라면 시행령 제18조 제1항에 따라 일시금 수급을 원한다는 것만으로 급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유도, 증빙도 필요 없습니다.

물론 이때도 세금은 붙습니다. 일시금으로 받으면 퇴직금 재원에는 감면 없는 퇴직소득세가, 세액공제 재원에는 16.5%가 적용됩니다. 그래서 55세를 갓 넘긴 시점에 목돈이 필요하다면, 전액 일시금과 연금 개시 후 한도 내 인출 중 어느 쪽이 유리한지 비교해볼 만합니다. 필요한 금액이 그해 연금수령한도 안에 들어온다면 연금으로 개시하는 편이 세금이 훨씬 가볍습니다.

창구에 가기 전 준비할 것들

  • 내 사유가 시행령 제18조 제2항의 일곱 가지 중 하나에 해당하는지
  • 무주택 요건이 걸리는 사유라면 세대 전체의 주택 보유 상황
  • 의료비 사유라면 6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하다는 진단 관련 서류
  • 파산·개인회생 사유라면 결정일이 신청일로부터 5년 이내인지
  • 계좌의 재원 구성 — 과세제외금액, 이연퇴직소득, 세액공제 받은 금액이 각각 얼마인지
  • 필요한 금액이 계좌 전체인지 일부인지(일부라면 해지 외의 길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 담보대출 취급 여부와 한도, 금리
  • 본인 나이가 55세를 넘겼는지

자주 묻는 질문

IRP에서 필요한 금액만 조금 빼는 건 정말 안 되나요?

법정 사유에 해당할 때만 됩니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시행령 제18조 제2항이 인출 사유를 열거하고 있고, 여기에 해당하지 않으면 계좌를 해지해 전액을 인출하는 방법만 남습니다. 필요한 금액이 100만원이어도 계좌 전체가 닫힙니다.

아이 대학등록금은 왜 안 되나요?

대학등록금·혼례비·장례비는 시행령 제2조 제1항 제4호의2에 들어 있는데, 이 조문은 수급권 담보제공 사유를 정한 것입니다. IRP 중도인출을 정한 제18조 제2항은 제4호의2를 인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담보대출은 가능하지만 인출은 되지 않습니다.

전세보증금 때문에 빼려는데 집을 한 채 갖고 있습니다. 가능한가요?

어렵습니다. 시행령 제2조 제1항 제1호의2는 "무주택자인 가입자"를 전제로 하고 있어, 주택을 보유한 상태에서는 이 사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주택 구입 사유인 제1호도 같은 전제를 두고 있습니다.

중도인출하면 그동안 받은 세액공제를 다 토해내나요?

토해낸다기보다, 세액공제를 받은 납입액과 운용수익에 소득세법 제129조 제1항 제6호 나목에 따른 15%(지방소득세 포함 16.5%)가 원천징수되는 방식입니다. 공제받을 때 적용된 비율이 13.2%였다면 오히려 손해가 나고, 16.5%였다면 비슷해집니다.

의료비로 뺄 때 세금을 덜 낸다던데 조건이 뭔가요?

소득세법 제14조 제3항 제9호 나목이 의료목적 등 부득이한 사유로 대통령령이 정한 요건을 갖춰 인출하는 경우를 분리과세연금소득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요건과 증빙 제출 절차가 있으므로 인출 전에 금융회사에 사유를 신고해야 합니다. 인출을 먼저 하고 나중에 사유를 소명하는 방식은 인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퇴직금이 들어 있는 IRP를 해지하면 퇴직소득세는 어떻게 되나요?

연금이 아닌 형태로 나가므로 소득세법 제129조 제1항 제5호의3의 70%·60%·50% 감면이 적용되지 않고, 원래 계산된 이연퇴직소득세가 그대로 붙습니다. 퇴직할 때 받은 원천징수영수증에 그 금액이 적혀 있으니 해지 전에 확인해보시면 실제 부담을 미리 알 수 있습니다.

해지 버튼을 누르기 전에 확인할 순서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IRP는 가장 손대기 쉬워 보이는 자산입니다. 잔액이 눈에 보이고 계좌도 내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 계좌는 빼는 순간 되돌리기가 가장 어려운 자산이기도 합니다. 다시 넣으려면 연 1,800만원 납입 한도에 걸리고, 이미 낸 세금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순서를 지켜보시길 권합니다. 첫째, 내 사유가 조문에 있는지 다시 확인합니다. 둘째, 없다면 담보대출로 해결되는 사유인지 봅니다. 셋째, 55세를 넘겼다면 중도인출이 아니라 급여 수령으로 접근합니다. 이 세 가지를 다 거치고도 남는 선택이 해지라면, 그때는 계좌의 재원 구성표를 받아 실제 세후 금액을 계산하고 결정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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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오후

중년 이후의 일상에서 실제로 필요한 제도와 절차를 정리합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노후 준비, 지원 제도까지 공식 자료를 확인해 신청 조건과 방법, 놓치기 쉬운 예외를 함께 짚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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